한 번 일어난 역사 = 진실일까?
지난 글에서 내 포트폴리오의 5년 최대낙폭(MDD)이 −8.8%라고 했다. 그런데 이 숫자를 곧이곧대로 믿어도 될까?
문제는 이거다. −8.8%는 “실제로 한 번 일어난” 단 하나의 경로다.
좋은 날과 나쁜 날이 어떤 순서로 찾아왔느냐는 상당 부분 운이다.
나쁜 날 몇 개가 우연히 흩어져 있었다면 낙폭은 얕았을 것이고, 우연히 한곳에 뭉쳐서 왔다면 훨씬 깊었을 것이다.
즉 −8.8%는 운이 좋았던 경로일 수도 있다. 레버리지를 키울지 말지 같은 중요한 결정을, “운 좋았던 단 한 번”에 기대고 싶진 않았다.
안 일어난 역사들을 들여다보는 법
여기서 쓰는 도구가 부트스트랩(bootstrap)이다. 아이디어는 의외로 단순하다.
실제 수익 데이터를 재료로, “있을 법했지만 실제로는 안 일어난” 가상의 역사 수천 개를 만들어서, 그 결과의 분포를 본다.
가장 순진한 방법은 하루하루를 모자에 넣고 무작위로 다시 뽑는 것이다. 그런데 바로 여기에 함정이 있다.
함정 : 하루씩 섞으면 위험이 증발한다
시장의 폭락은 하루만 뚝 떨어지고 끝나지 않는다. 나쁜 날은 뭉쳐서 온다(이른바 변동성 군집). 그런데 하루 단위로 섞어버리면, 이 “최악의 한 주”가 산산조각 나서 상승일들 사이로 흩어진다. 폭락이 희석되는 것이다.
가상의 12일 수익률로 보자. 가운데에 −5%, −6%, −4%가 연달아 터지는, 전형적인 폭락 구간이 박혀 있다.
| 날 | 1 | 2 | 3 | 4 | 5 | 6 | 7 | 8 | 9 | 10 | 11 | 12 |
|---|---|---|---|---|---|---|---|---|---|---|---|---|
| 수익률 | +2 | +1 | +3 | −1 | +2 | −5 | −6 | −4 | +3 | +2 | +1 | +2 |
이 원본의 최대낙폭은 −14.3%다 (고점 직후 −5/−6/−4가 연타로 꽂히니까).
이제 같은 12개 숫자를 섞는 방식만 바꿔보자.
| 방법 | 한 예시 경로의 MDD | 무슨 일이 일어났나 |
|---|---|---|
| 원본 (실제로 일어난 역사) | −14.3% | −5/−6/−4가 붙어서 깊은 골 |
| 하루씩 무작위로 섞기 | 약 −7% | 폭락이 상승일 사이로 흩어져 절반으로 축소 ❌ |
| 3일 '블록'째로 섞기 | 약 −10~14% | 폭락 덩어리가 통째로 보존 ✅ |
하루씩 섞으면 −6% 다음에 +3%가 끼어들어 충격이 상쇄된다. 그래서 위험을 절반으로 과소평가한다. 반면 덩어리(블록)째 옮기면 −5/−6/−4가 붙어 다니므로, 깊은 낙폭이 현실적인 빈도로 다시 등장한다.
블록 부트스트랩, 한 줄 정의
수익 시계열을 일정 길이의 블록으로 잘라(폭락의 군집성을 보존), 그 블록들을 무작위로 다시 이어붙여 가상의 역사를 수천 개 만든 뒤, 관심 지표(여기선 낙폭)의 분포를 본다.
블록 길이는 “나쁜 구간이 보통 얼마나 이어지는가”에 맞춘다. 나는 약 20일을 쓴다. 너무 짧으면 군집이 깨지고(하루씩 섞기로 회귀), 너무 길면 경로가 다양해지지 않는다.
실제 내 포트폴리오에 돌려보니
내 수익곡선을 5,000개의 가상 역사로 다시 살려, 각 역사의 최대낙폭을 모아 줄 세웠다.
| 기준 | 값 | 의미 |
|---|---|---|
| 실제로 일어난 MDD | −8.8% | 운이 섞인 단 한 번의 경로 |
| 블록 부트스트랩 하위 5% 지점(p5) | −11.7% | 가상 역사의 95%는 이보다 얕았고, 운 나쁜 5%만 더 깊었다 |
해석은 이렇다. “−8.8%는 운이 약간 좋았던 값이고, 현실적으로 각오할 낙폭은 −11.7% 정도” 라는 것. 그래서 나는 위험을 가늠할 때 실제값(−8.8%)이 아니라 p5(−11.7%)를 기준선으로 삼는다. 레버리지를 1.5배 올리면 이 각오선도 대략 1.5배(−18% 안팎)로 커진다. 그걸 감당할 수 있는지가 진짜 질문이 된다. (p5는 하위 5%를 의미)
남기는 것
- 하나의 백테스트 곡선은 “가능했던 역사” 중 한 장의 스냅샷일 뿐이다. 그 한 장의 낙폭을 한계치로 믿으면, 운 좋았던 경로에 베팅하게 된다.
- 섞을 때는 하루가 아니라 덩어리째. 폭락의 군집성을 깨면 위험은 거짓말처럼 사라진다. 가장 위험할 때.
- 실제값이 아니라 분포의 꼬리(p5)로 각오하라. 이게 “운”과 “실력”을 분리하는, 의외로 값싼 한 줄짜리 검증이다.
※ 이 글은 검증 방법론을 공유하기 위한 것으로, 구체적인 신호·종목·사이징은 공개하지 않습니다.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.
댓글